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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뉴스타부동산그룹 남문기 회장 "동포권익 위해 한국 정치인 꿈꾸지만 구걸은 안해" (중앙일보)

newstar 2016-07-18 (월) 10:41 1년전 2722
LA중앙일보 > 뉴스 > 사회/정치 > 사람/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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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뉴스타부동산그룹 남문기 회장 "동포권익 위해 한국 정치인 꿈꾸지만 구걸은 안해" 
2002년 3개월 시한부선고
2012년엔 간암 수술 받아 
"죽을 고비 2차례 넘기니 
동포권익위한 사명감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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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부동산그룹 남문기 회장이 뉴스타부동산의 역사가 사진으로 전시된 자신의 사무실 앞 복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재외동포 비례대표 거론 불구 
2012·2016년 국회 입성 실패 
"해외동포 실질적 권익 위해
누구든 한국 국회 입성해야"


궁금했다.

그만큼 벌었고 그만큼 유명해졌으면 됐지 한국 정치판에 뭐 그리 미련 남아 서성이는지. 게다가 14년 전 간경화 말기 판정에, 4년 전 다시 간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살아 돌아온 그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고도 여전히 경영일선 최전방에 서 있고 각종 한인사회 행사에 한국 정치권까지 그의 분주한 발걸음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보통사람이라면 암 재발할까 전전긍긍 번잡한 세상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유유자적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러니 그 속내가 자못 궁금할 수밖에. 뉴스타부동산그룹 남문기(62) 회장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후, LA한인타운 뉴스타부동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300달러로 이룬 아메리칸 드림 

남 회장은 미주 한인사회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적 표본이다. 건대 법대 73학번인 그는 잘나가던 주택은행 행원생활을 접고 1982년 300달러 들고 도미해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부동산을 창업한 뒤 승승장구 지금에 이르렀다. 뉴스타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 주요도시 30곳에 지사를 설립하고 1000여의 직원을 거느린 연매출 15억달러에 이르는 미주 한인사회 대표 부동산업체다. 그리고 그는 이 성공을 발판으로 LA한인회장(2006~2008), 미주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2008~2009),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2009~2011), 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2011~2012)을 거쳐 현재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등 미주 한인사회 대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그의 인생에도 시련이 닥쳤다. 2002년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3개월 시한부 선고였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 우여곡절 끝 기적적으로 고비를 넘겼지만 10년 뒤인 2012년 12월 다시 간암 판정을 받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주저앉았을 법도 한데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예정된 빡빡한 연말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지원유세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간의 일부를 절제하는 7시간 대수술을 받았다. 그 후 적잖은 시간의 요양생활을 거치고 나서야 그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대개 삶이 180도 달라진다는데 그의 일상엔 특별한 변화란 없었다. 여전히 일선에서 신규 에이전트 교육을 직접하고,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고, 지난 봄엔 한국 총선을 맞아 서울에 두 달여 간 체류하기도 했다. 이미 2011년 한나라당 재외국민위원장에 임명됐다 시민권을 포기하고도 자진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또 골치 아픈 한국 정치판이라니. 게다가 불과 4년 전 간암으로 대수술까지 받은 그가 아니던가. 

"맞아요. 남들 보면 미쳤다 하겠죠. 그런데 죽을 고비 넘기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니 몸보신보다는 오히려 죽는 날까지 사명감 가지고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 같아요. 제가 좀 별나긴 하죠.(웃음)"

이쯤 되면 뭐 에둘러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가 그토록 한국정치에 '목매는' 이유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높아졌다. 

"제가 돈이 없어요? 명예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더 바랄 것도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한인사회에서 일하다 보니 720만 해외동포들의 권익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한국정치에 진출해 동포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라 확신했다. 

"아직은 해외한인들에게 배타적인 한국사회와 한국국회에 가서 실질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소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파이터가 필요해요. 제가 바로 그 역할에 적임자죠. 만약 제가 국회에 간다면 분명 최다 입법 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울 겁니다."

결코 돌려 말하는 법 없는 그의 이 투박한 직설화법은 보기에 따라선 좀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이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배짱이 그동안 적잖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LA한인회장 시절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에 건의해 현지인 LA총영사(김재수) 취임과 2009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재외동포 참정권 실시에 힘을 보탰다. 또 같은 해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에 취임하자마자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와 면담을 통해 재외동포들의 공항 입국 시 내국인 대우를 일사천리로 성사시키기도 했다. 

#경상도 사나이의 뚝심 혹은 고집 

이처럼 한국정치권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활발한 활동을 한 덕분에 그는 최근 한국 총선 때마다 재외동포 비례대표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두 번의 총선에서 그의 국회입성 꿈은 번번이 불발됐다. 그의 불도저 기질이라면 어떻게든 성사시키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였을 것 같다했더니 웬걸.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올해 총선 때 서울에 간 건 비례대표 공천신청 후 선거 관계자와 언제든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렇다고 소문처럼 적극적으로 로비를 한 건 아니고요. 두 달 동안 체류하면서 여권실세나 국회의원을 만나 밥 한번 먹은 적이 없어요. 그냥 무작정 불러주기만을 기다린 것뿐이죠. 제가 그런 쪽으론 지나치게 샤이합니다.(웃음)" 

게다가 지금껏 정치권 실세에 정치헌금이나 그럴듯한 접대 한번 한 적 없다는 것이 그의 부연설명이다.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구걸하면서까지 국회 입성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제가 하려는 게 해외동포 권익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결국 대한민국 미래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인데 비굴해질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그가 한국 정계진출의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다음 총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되면 좋겠지만 여건이 안 되면 적임자만 있다면 누구든 물심양면 지원하고 싶습니다." 

좀 상투적이다 싶지만 그렇다고 속에 없는 소리를 할 이도 못되지 싶다. 목표를 정하면 돌진하는 타고난 장사꾼인건 분명하지만 그 이면엔 '해병대 정신'과 의리를 유달리 강조하는 그 세대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뚝심이랄까 고집도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골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온 그이기에 이 특별한 도전도 어떤 여정이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주현 객원기자
출처 :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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